아침 전철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붐벼서 화면을 볼 수 없다. 밤에 가족이 자고 있는 방에서는 교재는 펼칠 수 있어도 소리는 낼 수 없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이어폰을 잊어 소리를 낼 수 없는 대신 화면은 볼 수 있다.

전부 뭉뚱그려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날'이라고 부르면 손해다. 할 수 있는 일은 상황마다 전혀 다르다. 먼저 조건을 세 가지로 나눈다. 여기가 애매한 채로는 과제가 늘 어중간해진다.

  •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이어폰이 있는지, 주변 소리에 묻히지 않는지
  • 화면이나 종이를 볼 수 있는가
  •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가

갈림길은 첫 번째다. 들을 수 있는 날과 들을 수 없는 날을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이 둘을 나눈 순간, 그날 할 일은 거의 정해진다. 남은 것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다.

들을 수 있는 날은 단어가 아니라 대답의 방향을 따라간다

소리는 들을 수 있는데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날, 입을 움직이는 연습의 대용품을 찾을 필요는 없다. 듣기 연습은 듣기 연습으로서 충분히 성립한다. 과제는 하나로 좁힌다. 대답이 대화를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 그것만 따라간다.

이런 대화를 들었다고 하자.

A: It's starting to rain. Shall we get a taxi?
B: We could, but it's only about ten minutes on foot.

B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가, 거절한 것인가. 답은 어느 쪽도 아니다. We could로 택시안을 일단 받아들이고, but 뒤에 '걸어서 10분 정도'라는 재료를 두어 대화를 걷는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분명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휩쓸리지도 않았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A의 다음 한마디에 달려 있다.

그래서 과제는 '대답의 역할을 하나 고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받아들이기, 거절하기, 다른 안을 내기, 조건을 덧붙이기. 이 예는 '다른 안을 내기'다. 모든 단어를 잡아냈는지는 차순이어도 좋다. A의 제안에 대해 B가 대화를 어느 쪽으로 움직이려 했는지 보이면, 그날의 듣기는 성공한 것이다.

들으면서 긴 답을 쓰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 반응은 짧게, 듣는 틈에 생각할 시간을 둔다. TeachingEnglish의 듣기 수업 설계 해설에서도 그런 배려가 권장되고 있다. 과제를 하나로 좁히는 방식은 그 생각을 서서 듣는 전철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화면을 볼 수 없다면, 나가기 전에 교재를 골라 재생하는 데까지 마쳐 둔다. 되감기도 자막 조작도 필요 없는 상태로 만들고, '대답의 역할을 하나 고르기'라는 과제만 들고 나간다. 내려서 화면을 볼 수 있게 되면, 고른 역할과 결정적인 단서가 된 단어 하나만 메모한다. 이 예라면 but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들을 수 없는 날은 들으려 하지 말고 다음 한마디를 쓴다

이어폰이 없다. 주변이 조용해 소리를 낼 수 없다. 하지만 화면은 볼 수 있다. 그런 날에 무리하게 듣기 과제를 계속할 의미는 없다. 쓰기 과제로 바꾼다. 그게 정답이다.

대화에서 물어볼 법한 질문을 하나 둔다.

What do you usually do after work?

그것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한두 문장만 쓴다.

I usually cook something simple and watch a show.
If I'm not too tired, I go for a short walk.

멋진 영어는 필요 없다. 자신이 실제로 답할 내용으로 만든다. 저녁은 만드는가, 사 오는가. 귀가 후에 나가는가, 집에 있는가. 생활에 맞는 대답이라면 나중에 소리 내어 말할 때 내용을 다시 생각하는 수고가 사라진다. 근사한 문장보다 자신의 문장이다.

쓰면 말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해진다. '일 끝나고'는 썼는데 '멍하니 있다'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사전으로 찾아볼 것인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꿀 것인지는 이 단계에서 정해 버릴 수 있다. 이렇게 쓴 한두 문장이 그대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시간의 원고가 된다.

화면도 볼 수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황, 예를 들어 걷는 중이라면 무리하지 않는다. 대답의 내용만 머릿속으로 하나 정해 두고, 화면을 볼 수 있을 때 적어 두면 된다.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다

혼자가 되었을 때, 차 안처럼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을 때. 그 시간은 새 교재를 여는 시간이 아니라 준비해 온 것을 쓰는 시간이다.

  • 적어 둔 대답을 소리 내어 읽는다.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짧은 말투로 고친다
  • 들은 대화 속 B의 대답을 직접 말해 본다. but 뒤는 우산을 가지고 있다, 비가 곧 그칠 것 같다 같은 다른 이유로 바꿔 말해도 좋다

이렇게 하면 들은 시간과 쓴 시간과 말한 시간이 같은 대화의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 바꿔 말한 B의 대답을 녹음해 두면, 다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날에는 이번에는 듣는 쪽으로서 역할을 확인하는 재료가 된다.

다만 듣는 시간 전부를 과제로 바꿀 필요는 없다. 즐김으로 남겨 두는 프로그램이 있어서야 이런 연습도 이어진다. 그 경계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전부 '교재'로 만들지 않기 위해에서도 다루고 있다. 조용한 시간을 전부 공부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도 계속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