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안내를 영어로 듣고 날짜도 시간도 요금도 제대로 메모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니 일정을 통째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숫자 듣기가 서툴러서가 아니다. 숫자는 맞다. 어긋난 것은 그 숫자로 무엇을 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이런 안내가 있다.
Your booking is confirmed for October fifteenth. Please arrive at two fifteen in the afternoon. The ticket is eighteen pounds per person, payable at the front desk.
(예약은 10월 15일로 확정되었습니다. 오후 2시 15분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티켓은 1인당 18파운드이며, 프런트 데스크에서 지불해 주세요.)
숫자만 늘어놓은 메모는 나중에 배신한다
숫자를 쫓아가며 듣고 있으면, 메모는 대략 이렇게 된다.
10/15 2:15 18
세 가지 모두 맞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15가 오전인지 오후인지, 18의 단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2:15에 무엇을 하는지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며칠 뒤에 다시 보면 ‘2:15 시작’이라고 읽어 버릴 수 있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
같은 안내를 숫자에 역할을 붙여 쓰면 풍경이 달라진다.
- 10/15: 예약일
- 도착 14:15(in the afternoon)
- 시작 ?(안내에서는 언급되지 않음)
- £18/1인, 프런트 데스크에서 지불
늘어난 것은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라는 정보다. 여기가 핵심이다.
2:15를 ‘도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arrive
이 14:15는 도착 시간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숫자 앞에 arrive가 있기 때문이다.
‘2시 15분까지 오라고 하니 시작은 2시 반쯤이겠지’라고 채워 넣고 싶어진다.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안내는 거기까지 말하지 않았다. 시작 시간은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 칸은 ‘?’인 채로 남긴다. 그 ‘?’는 실패가 아니다. 문의하거나 다른 안내로 확인해야 할 곳을 보여 주는 표시다.
시험 삼아, 안내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될까.
The tour starts at two fifteen in the afternoon.
이번에는 14:15가 시작 시간이고, 비는 것은 도착 칸 쪽이다. two fifteen in the afternoon이라는 소리는 한 글자도 다르지 않지만, 넣을 칸은 숫자로 정해지지 않는다. 연결된 동사가 정한다.
듣기 전에, 칸만 먼저 만든다
리스닝 수업 설계에서는 듣기 전, 듣는 동안, 들은 뒤로 나누어 과제를 구성하는 생각이 있다(TeachingEnglish의 리스닝 수업 설계 해설). 자습에 가져온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듣기 전에 ‘날짜/도착/시작/요금’이라고 칸만 적어 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칸이 있으면 듣는 방식이 달라진다. 들은 숫자를 어디에 넣을지 그 자리에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arrive 뒤의 숫자를 시작 칸에 넣으려 한다면, 그 망설임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 다 들은 뒤에도 빈 채로 남은 칸이 있다면, 안내가 언급하지 않은 것인지, 자신이 놓친 것인지, 원고를 보거나 다시 한 번 들어 확인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