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한 영어의 대본을 열면, 아는 단어만 나열되어 있을 때가 있다. 속상한 순간이다. 하지만 거기서 “단어는 안다. 나머지는 귀의 문제다”라고 단정하고 같은 곳을 다시 흘려 듣는 것은 성급하다. 멈춘 이유가 귀에만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듣기는 소리에서 단어를 건져 올리는 작업만이 아니다. 장면, 앞뒤의 말, 배경지식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작용도 동시에 돌아가고 있다(TeachingEnglish의 듣기 해설). 대본을 보고 “안다”고 느끼는 것과, 그 한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별개다. 어디에서 멈췄는지만 알면, 할 수 있는 일은 반복 재생 말고도 있다.
대본을 열었으면, 먼저 그 한 문장을 세 가지로 나눠 보자.
- 표현의 의미: 단어가 아니라 덩어리로서 의미를 알고 있었는가
- 소리와의 대응: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소리의 어디에 있었는가
- 앞뒤의 맥락: 그 한 문장이 대화 속에서 무엇을 받고 있었는가
읽어도 통하지 않는다면, 단어가 아니라 덩어리를 의심하자
The company offered her a job in Osaka, but she turned down the offer.
turn도 down도 offer도 익숙한 단어다. 그래도 turn down을 하나의 덩어리로 알지 못하면, 문장은 “오사카의 일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제안을…… 내렸나?”에서 멈춘다. 대본을 읽어도 개운하지 않다면, 문제는 귀가 아니다. 의미가 비어 있다.
이대로 다시 들어도 소리는 전보다 또렷이 들리지만 의미의 구멍은 남는다. 글로 잡히지 않는 부분은 먼저 의미를 채우는 편이 좋다. turn과 down을 따로 찾지 말고, turn down으로 찾자. “거절하다”라는 뜻을 알면 but 앞과 뒤도 한 줄로 이어진다.
기준은 단순하다. 대본을 눈으로 읽고 내용을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면, 거기가 출발점이다.
읽으면 알겠는데 들으면 사라진다면, 소리의 자리를 찾자
We can meet at eight.
대본이라면 “8시에 만날 수 있다”고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들으면 We meet at eight처럼 느껴져서, can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meet at eight가 하나로 이어져 단어의 바뀜을 놓칠 때도 있다.
이는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글자와 소리의 위치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말은 단어마다 끊어서 발음되지 않는다. can 같은 단어에는 강하게 말하는 형태와 짧고 약하게 말하는 형태가 있고, 약한 형태에서는 글로 볼 때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TeachingEnglish의 연결된 말하기 해설). 물론 항상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렷이 말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문장 전체를 다시 흘려 듣기보다, 헷갈린 곳을 두세 단어의 구로 끊어 듣는 편이 좋다. We can meet, meet at eight로 범위를 좁히고, 대본과 비교하며 “can은 이 짧은 소리 근처다”라고 자리를 맞춰 간다.
한 문장은 알겠는데 이야기를 잘못 받아들였다면, 앞 발언으로 돌아가자
A: We could take the bus at six, or wait for Ken and drive.
B: Ken won't be free until seven.
A: Then let's just take the bus.
B: That sounds better.
마지막 That sounds better.는 단어도 소리도 쉬워서 “그 편이 낫겠다”고 옮길 수 있다. 그래도 다 듣고 나서 “Ken을 기다려 차로 가기로 했다”고 받아들였다면, 결론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멈춰 있는 것은 that이 가리키는 대상이다. 귀에 남은 drive나 seven에서 결론을 만들어 내면, 이런 어긋남이 생긴다. that이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앞의 Then let's just take the bus., 즉 6시 버스를 타는 안이다.
that의 답은 That sounds better. 안에 쓰여 있지 않다. 이 한 문장을 반복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한 발언 앞, 다시 그 앞으로 돌아가 that, it, then이 무엇을 받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것이 지름길이다.
헷갈리면, 의미부터 순서대로 지워 나가자
한 문장에 원인이 겹쳐 있을 때도 있다. 헷갈리면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확인한다. 순서가 정해져 있으면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본을 봤을 때의 상태 | 의심할 곳 | 다음에 할 일
읽어도 내용을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없다 | 표현의 의미 | 덩어리로 사전을 찾는다
읽으면 알지만 소리의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 | 소리와의 대응 | 두세 단어의 구를 듣고 글자와 맞춘다
한 문장은 알지만 대화의 결론을 잘못 받아들였다 | 앞뒤의 맥락 | 지시어가 받는 발언으로 돌아간다
의미 확인을 먼저 두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장으로서 이해하지 못한 한 문장을 소리만의 문제로 계속 다시 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가 통하고 나서 들으면, 어디가 들리지 않았는지도 보이게 된다.
듣지 못한 한 문장 옆에, “의미” “소리” “맥락” 중 어느 것이었는지 한 단어로 적어 두자. 다음에 대본을 열었을 때 무엇부터 시작하면 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아예 소재 자체를 다시 고르고 싶어졌다면, 연습 소재를 보는 다섯 가지 관점도 도움이 된다. 소재가 맞지 않으면, 한 문장을 나누기 이전부터 계속 걸리게 된다.
